<한암스님과의 인연>

김광식/ 이후 한암스님과 용성스님이라는 당대 최고의 고승의 가르침을 받으셨죠?

박희승/ 한암스님 이야기를 해주시죠.

용명스님/ 스님은 을축년 음력 8월에 강화 보문사를 거쳐 개성을 구경하러 가게 되었어. 내가 시봉이니까 따라 나섰지. 개성에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선죽교에 갔는데 정포은의 공덕비를 보고 한암스님은 감격해 하시더라고. 거기서 글을 지으셨는데 "석양에 주장자를 머물러 놓고 충신의 비에 조문을 한다. 절개 높은 남자아이는 전쟁하다 죽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 같으면 못할 소리를 하셨는데 나라도 없고 아비도 없는 우리 같은 무리는 살아있는 인간인데 장사를 지냈으니 어찌 불쌍하지 않을쏘냐." 하는 시였지. 개성폭포 위에 관음사라고 있는데 거기서 스님이 나보고 받아서 쓰라고 해서 썼지. 내가 놀라서 왜놈들한테 반항할 수 있지만 무국(無國)이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큰일날 소리라고 했어. 스님은 글은 사실대로 기록을 해야된다고 하면서 그대로 받아쓰라고 했어. 3년 전에 한암스님 문집을 만든다고 하길래 그 글을 실었어.
서울에 있을 때는 변영만, 오세창, 정인보, 박한영, 최남선이 스님을 찾아오는 거야. 스님은 속이 아픈 병이 있었는데 물이 좋은 곳에 가려고 하셨어. 자꾸 금강산에 가시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종욱씨가 오대산이 망해가니 살려달라고 간청을 한 거야. 그래서 오대산으로 가게 된 거야. "머리는 돌이켜 금강산을 향하는데 몸은 한강변에 머물러 있다. 작대기 끝에 눈이 있는 그 밝기가 달과 같다. 천지가 생기기 전 그 음을 뒤쫓아 가로다." 하는 시를 지어서 변영만, 최남선 등이 스님이 오대산 가는 것을 말리러 왔을 때 스님이 그 글을 보이셨지.
월정사가 망해갔거든. 홍보룡이란 이가 대강사인데 제자를 잘못 두어 가지고 망했다고. 유점사 김일운이란 스님을 모셔다가 주지를 시키고 두 동(冬)을 지내고 가려고 하니까  지암스님을 주지로 청했다고. 지암스님은 양양 명주사 주지였어. 지암스님은 망해가는 절을 맡으려니까 겁이 났었나봐. 지암스님이 월정사 주지로 가기 전 명주사에 있으면서 병인년..(주..1926년..) 에 한암스님을 찾아와서 월정사를 건져주시라고 부탁했지. 또 오대산이 물이 좋다고 하니까 스님이 가기로 하셨어. 그래서 서울에서 오대산을 가는데 한달 열흘이 걸렸어. 스님은 절대로 차를 타지 않으셨고 여관에서도 주무시지 않았지. 꼭 절만 찾으셨어. 몇 십리를 절을 찾아 왔다 갔다 했지.

박희중/ 봉은사 선원은 어디였습니까?

용명스님/ 판전에 있었어. 한 10여명 있었지.

박희승/ 당시에 이종욱스님이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감옥에 갔다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용명스님/ 이종욱씨는 그전에 일본에 완전히 귀화를 한다고 총독부에서 선언했다고 들었어. 월정사 주지 진산식하고 나중에 상원사에 올라왔는데 한암스님이 이종욱스님한테 과거에 독립운동 사실이 있어서 경찰에서 시끄럽게 하면 불편하지 않느냐 하니까 ‘저는 만주에 다녀와서 총독부에 가서 귀화선언을 했기 때문에 경찰에서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라고 직접 이야기하더라고. 내가 직접 들었어. 병인년..(주..1926년..)4월 8일 진산식을 했으니까 한 5월 쯤의 일이야. 그때 절에 중이 없었어. 영암스님이 월정사 시무보고 있었고.

박희승/ 스님은 상원사에 얼마나 계셨어요?

용명스님/ 여름 안거를 상원사에서 보냈는데 전강, 동산, 금오, 탄옹, 설봉, 고송 등 쟁쟁한 인물들이 다 있었어. 7~8인이 있었어. 음력으로 5월 초5일 밤에 화두를 들고 있다가 깨친 바가 있었단 말이야. 몰현금..(주..몰현금(沒絃琴): 줄이 없는 거문고. 상식이나 분별을 초월한 깨달음을 비유한 말...)소리를 깨달았지. 밥을 먹다가 내가 몰현금 소리를 들어라 하고 소리를 질렀어. 그랬더니 금오스님이 오더니만 나보고 미쳤다고 뺨을 때리는 거야. 우리가 차를 마시는데 정금오스님이 몰현금 소리를 말해 보거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직 못 들었냐고 물었어. 나는 그날 밤에 잠이 안오더라고. 아침 먹고 난 다음에 한암스님이 나보고 법당 뒤로 나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가보니 네가 몰현금 소리를 들었다 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고 물으셨어.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서 돌멩이를 주어서 하늘로 던지니 돌멩이가 그대로 땅에 떨어졌어. 그게 무슨 뜻인고 물으셨어. 나는 마음이 일어나고 내려놓는 것이 둘이 아니다. 그거야. 그러니까 스님께서 따귀를 사정없이 올려 붙이니 나는 놀래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지.
그 뒤로는 화두가 안 들려. 그 다음에는 참선은 안하고 장경(藏經)을 뒤적거렸어. 그러고 있다가 가을에 한암스님이 중대 노전(爐殿)으로 가시게 되어 따라가게 되었지. 나는 거기서 글을 배우게 되었어. 반야경, 금강경, 법화경, 기신론을 배웠어. 스님은 오후불식 하니까 아침 점심까지 드시고 설거지하면 스님은 아랫방에 앉아 계시고 나는 윗방에서 글을 읽었지. 눈이 오니까 밖에 나갈 수도 없었지. 적멸보궁에 마지를 올려야 되는데 눈이 오면 눈을 다 치우고 마지를 올리러 가야했어. 스님은 내가 잘 하는지 어떤지를 감시했지. 잘못하면 불벼락이 떨어졌어.
그렇게 시봉을 하는데 스님은 조석으로 절을 하는데 산왕대신하고 조왕대신 앞에서도 절을 하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산신탱,조왕탱을 떼다가 한쪽에 숨겨버렸어. 그러니 스님이 어떻게 된거냐고 물으시길래 나는 부처님의 자식이고 산신하고 조왕은 내 하인이니 어떻게 상전이 하인에게 절을 하느냐고 따졌어. 그랬더니 스님이 나를 불러 앉히시더니 군주가 정치를 할때 나이가 어리면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거나 나이 많은 대신이 정치를 한다. 네가 부처님의 제자이긴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범부에 불과하고 산신과 조왕신은 원력을 세워서 이 도량을 지키고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국가로 말하면 원로대신이라 할수 있어. 그러니 네가 탱화를 치운 것은 큰일날 일이다 하시는 거야. 내가 들으니 그것도 이치에 맞느 것 같아서 다시 내걸고 나도 조석으로 절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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