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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큰스님의 법문;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을 찾아가는길)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1-07 (월) 03:53 조회 : 125




1); 옳바른 마음을 찾아서 가는길.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살아 가자는데에는.

믿음과 의지처가 있는데; 사람은 항시 생각하며 그어느 누구인가. 또는 의지처를 택하고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종교를 택하여 원하고 구함을 의지처로 삼으며 믿고 살아 감니다.

그러나 세상이 혼탁하고보니 종교도 수백; 수천가지에 달하고 있어요. 종교가 많아서 나쁘다는

것이 않이라;

종교란?

어느한 종교가 되었건; 또한 어떤종교를 막론하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종교가 않이라면 옳은

종교가 될수 없다는 것임니다. 인간의 현실적 생활상태를 보면 목적에 아무렇지도 않은 쓸대

없는 일에 마음의감정이 부풀어 올라서 속을썩이고 몇푼어치도 되지 않는 일들에 신경질이

생겨서 다투고 있어요. 사람삶의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세상에서는 양보를 하고서는 살수가

없다는 듯이. 추호라도 머리를 숙이고 下心하는 마음이 없다는 듯이 함니다.

악(惡)을 악인줄로 알면서도 싸우며 "고(苦)를 고로 알면서도 "노역(勞歷)을 하지 않으면 살아

 갈수가 없는 것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악과 고통 가운데 모든 일을 경영하면서 그날 그날을 근심과걱정가운데

에서 지내고 있어요. 높은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부유한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다 같이 지위와 금전인 물욕을 근심하고 있어요.

그럼으로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항시 근심에 잠기고 고통에 끄달리어서 생각을 졸이며

아프게 하고 있는 것임니다. 또한 이렇게 되므로 언제나 사람은 마음이 편할 때가 없게 됨니다.

예를 들어서; 가령 재산이 많이 있으면 재산으로 인해서 근심이 있고; 돈이 많이 있으면 돈으로

서 인하여 근심이 있고; 가정 살림살이의 도구에 이르기 까지라도 항상 그것으로 인하여 근심

과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만약에 뜻밖에 만나는 수재.화재.도난.이나 혹은

 원수나 채주에게 빼앗기고 물어놓고. 도두적에게 빼앗기고 자신이 모아논 소유를 없애놓고.

보면 그야말로 근심 덩어리가 가슴을 파고들어가는 것이 마치 독약을 퍼마신 것처럼 마음이 아

파서 견딜수가 없고. 가슴이 터져서 살아 갈수가 없게 되는 것이 사실임니다.

이러다 보면 결국에는 병에 걸려서 마지막 이세상을 하직하고 황천의 길로 가게 되면 자신

혼자서 외롭게 갈뿐이요. 누구 한사람도 따라 가는 사람이 없게 됨니다. 이것은 빈부와

귀천을 막론하고 다름이 없는 일인 것임니다.


이처럼 인간인 사람의삶은 실로 "무상(無常)한 존재인 것임니다.

그러나 인간사람의 현실생활의 실체를 속속들이 파들어가 보면.

대부분 모두가 다 언제나 부족 하다고 느끼는 가운데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임니다.

그럼으로 자신이 자신을 마음을 애태우며 괴롭게 하여 근심과걱정이 그림자와 같이 따라서

자신을 엄습하게 한다는 것임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오한과 열감에 사로 잡혀서 누웠다가

목숨을 마치는 사람도 많아요. 이러한 것이 인간생할의 현실인 것임니다,

그런데 생에서 "사(死)로 걸어가는 인생으로서는 "이해(利害). 성쇠(盛衰).훼예(毁譽). 고락(苦

樂). 등의 환경에 사로 잡혀서 "희놓애락(喜怒哀樂)과 "증애취사(憎愛取捨)를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가지를 그 내적 심리면에서 볼 때 그 주관력을 발동시키는 것은 "지정의

(知情意) 가운데 어떠한 것이 주가 되고. 있는가? 두말할 것 없이 감정이란 것이 그 주동력이

 된다고 할수 있어요. 왜? 냐 하면; 사람이 사람을 첫 대면할때 첫인상잉 눈에 들지 않아서 

감정을 거스리고 보면 뒤에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소개를 받고 "지성(知性)으로써 좋게

보려고 해도 좀처럼 바로잡혀지지 않는다는 것임니다. 사람은 이처럼 감정의동물이므로 이

감정을 여의고는 살 수 없는 것임니다. 그러면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는가 하는것이

문제인 것임니다. 그럼으로서 종교는 감정을 잘 처리하는데 있어서 좋은 "약석(藥石)이 된다고

할수 있는 것임니다.

우리가 인격이 고상하다. 학문이 많다. 혹은 낙오자다. 타락자다. 하는 것은 오직; 이 감정을 잘

 처리해서 잘 참아 나가는냐; 하는 데 있는 것이요. 권력이 있다든가. 학식이 많다든가. 금력과

세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을 잘 처리해서 재욕과 정욕과 명예욕과 그 다른 나뿐 방면에

 끄달리지 않고 또는 거만하지 않고 비루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공정하고 자비하면 권세보다

도 학식보다도 금력보다도 더 귀중하고 더 가치있는 것이다 하는 것임니다.


그러면 이렇게 귀중하고 가치있는 감정을 갖자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일찍이 "석가세존"께서 이 감정을 제어하고 "자성(自性)을 깨우처서 완전무결한 자기완

성을는 이루는 동시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최고진리를 "증득(證得)하는 길을 열어 주신 것

임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팔만사천종"의 방편으로 마음을 깨치는 "법문(法門) 문자로서 기록

한 것이 팔만대장경 인 것임니다.

이 "팔만대장경" 가운데는 "독경(讀經)이니. 염불(念佛)이니. 주력(呪力)이니 하는 여러가지

"방편문(方便門)이 있으나 마음을 가라 앉히는 데는 "일념삼매(一念三昧)를 닦는 "참선(參禪)

이 가장 필요한 것임니다.


참선이란;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신자도 할수 있는 것이요. 직업여하를 막론하고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임니다.


참선이란?

말은 "사유수(思惟修)라고도 해석하고 "정려(靜慮)라고도 해석 함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사고(思考)하는 방법이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그 감정을 처리하는 데는 자기마음의

내적 반성인 "회광반조(廻光返照)가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이란; 것은 본래 형상이 없는

 것이로되 불순한 감정이 일어남에 따라 형상이 나타나는 것임니다.

그러므롷 욕심이 날 때라든지. 두려운 생각이 일어 날 때라든지. 중상과모략을 당해서 화가 치

밀어 올 때 라든지. 어떤 희망에 대한 실망으로서 비관에 잠길 때 라든지. 시기심과 질투심에

남을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 날때라든지. 이렇게 불순한 마음과 생각이 일어 날때도 순간적으로

나오는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괴롭게 속을 태우고 가슴을 졸이고 할 것이 않이라 그 일어나는

생각이 근본과 뿌리를 냉정히 관찰해 보면 아무것도 형체가 없는 것임니다. 그것은 마치 "부운(

浮雲)의 종적과도 같다는 것임니다. 그래서 이러한 "악감정(惡感情)의 모든 생각은 어떠한 뿌

리와 덩어리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계의 자극에 따라 아무런 그럴듯한 근거도 없이

공연히 일어난 것이란 것을 자기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임니다. 만약 이와같이 깨닫게 될 때는 어

떤 감정이든지 마치 봄날 따뜻한 태양빛에 눈이 녹고 얼음이 녹아 사라져서 가라 앉고 마는 것

임니다. 그러면 복잡다난하던 모든 "망상(妄想)이 없어지고 본래 청정(淸淨)한 "진심(眞心)이

나타나게 되는 것임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라 앉히는 방법은 (대체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하고

"일념정좌(一念靜坐)하여 자기자신의 마음자체를 찾아보는 즉 "좌선공부(坐禪工夫)에 있는

 것임니다. 이렇게 일념본심(一念本心)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탈(解脫)의 길이며. 심성수양 "

心性修養)인 "선(禪)에 있기에 참선을 통하여 마음을 닦으라는 뜻인 것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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